넉넉레터는 소설책 마니아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고즈넉이엔티 PD들이 만드는 뉴스레터입니다. 뉴스레터는 처음이라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정성껏 준비했는데요. 넉넉레터가 앞으로 책을 사랑하는 분들과 좋은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의 창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희가 추천하는 책과 함께 고즈넉하고 '넉넉'한 시간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장금이 여사는 맨발이었다. 버선을 안 신고도 버선발을 뛰어나오는 효과를 발휘하며 아들을 맞이했다. 그렇게 좋수? 딸은 안 보이지? 하는 재영의 등짝을 치며 '얼른 가서 손 씻고 전 부쳐'라고 했다. 그러고는 '명태 식해가 맛이 아주 잘 들었어'라며 운몽의 등짝을 밀어 식탁 의자에 앉혔다. 늘 그래왔는데 재영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한 지붕 한솥밥의 힘일까. 재영이 느낄 소외감이 운몽에게도 전해졌다. 운몽은 명태 식해를 한 점도 입에 넣을 수 없었다. 먹는 시늉만 하고는 밀가루를 풀어 전 부칠 준비를 했다. 장금이 여사는 귀한 아들 손에 물 묻힐 수는 없다며 난리법석을 떨었다. 공부하느라 피골이 상접했으니 전은 당신과 재영이 부치면 된다고 했다.
"누나도 힘들어. 회사 다니느라."
운몽의 말에.
"우리 아들 마음 쓰는 거 봐라, 내가 아들 하난 잘 낳아놨지!"
장금이 여사는 큰 웃음을 터뜨리며 우쭐해했다.
그러고는 이런 동생 있으니 넌 얼마나 행운아냐고 재영에게 말했다.
재영의 콧잔등이 찡그러졌다.
「청년 주부 구운몽」 중에서
구가네 4녀 1남 중 1남을 맡고 있습니다.
위로 주르륵 딸 넷을 낳는 바람에 시가를 볼 낯이 없었던 장금이 여사가 절에 들어가 밤낮으로 빌고 빌어서야 겨우 얻은 귀한 1남, 구운몽. 그 시절 아들 귀한 집의 막내아들이라면 으레 그러했듯, 운몽이도 누나들은 구경도 못 해본 온갖 귀한 것들을 몸에 두르고 입에 넣으며 무럭무럭 성장합니다.
제 손으로는 코 팔 일도 없었던 운몽은 어머니 열망과 누나들의 피 땀 눈물을 발판 삼아 당당히 서울대 로스쿨에 입학하죠. 어머니 장금이 여사는 하나뿐인 아들이 ‘사’ 자 직업을 달고 사회에 나와 어화둥둥 어미를 업고 다닐 생각을 하니 자다가도 웃음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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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위해 존재하는 거야? 운몽이를 위해 존재하는 거야?
누나들은 운몽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합니다. 운몽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운몽의 뒤에 버티고 서 있는 엄마가 무서워서요. 어쩌다 운몽을 야단치기라도 하면 ‘기집애가 못된 것만 배웠다’며 그보다 몇 곱절은 더 무서운 얼굴을 한 엄마가 튀어나오곤 했으니까요. 누나들의 손과 발은 오로지 운몽을 먹이고 재우고 입히기 위해 존재하는 도구였습니다.
운몽이 엄마 뒤에 숨어 얄밉게 혀를 내미는 꼴을 참지 못하고 넷째 누나 재영이 와락 달려든 날, 재영이 가장 사랑하는 강아지 자두를 영영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 그날 재영의 가슴속에 생긴 생채기가 난 건, 강아지를 잃어버려서가 아니라 운몽이는 잘못한 거 없다며 꼭 안아주던 엄마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청년 ‘검사’ 구운몽이 아니라 청년 ‘주부’ 구운몽!
그렇게 온 집안의 희생을 등에 업고 서울대 로스쿨 타이틀을 목에 건 운몽이 별안간 주부 선언을 합니다. 우연히 집안일을 하게 되면서 자신도 몰랐던 ‘주부’로서의 능력을 발견했다나요. 누나들도 엄마도 옆집 동식 아저씨도 까무러칠 얘기죠. 다른 직업도 아니고, 아니 직업이라고 하기도 뭣한 주부라니요.
이제 마흔 줄을 바라보고 있는 누나 넷은 바닷가를 바라보고 있는 횟집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입니다. ‘그래, 운몽이도 이제 다 큰 어른이야. 언제까지 우리가 살라는 대로 살겠어.’ 누나들은 결국 빛을 보지 못한 자신들의 희생을 넘치는 술 한 잔에 흘려보냅니다.
소설의 첫 부분을 읽었을 때 엄마 생각이 났어요. 운몽네 집안처럼 엄마도 누나 넷에 막내아들 하나를 두고 있거든요. 그중에 엄마는 셋째 누나예요. 어려서부터 외갓집에 놀러 가면 막내 삼촌은 바닥에 누워서 우리랑 장난을 치고 이모들은 좁은 부엌에서 부지런을 떨던 기억이 나요. 그게 그때는 당연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더라고요. 편하게 누워 있다가 밥때가 되면 엄마가 해주는 따듯한 밥상을 받는 게 누구에게나 행복한 일이었을 텐데요. 엄마는 그때는 다 그랬다며 웃으며 얘기합니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에서 운몽과 원수지간처럼 지내는 누나, 재영에게 마음이 많이 쓰이더라고요. 진정한 행복을 찾아가는 운몽이도 기특하고 애틋하지만, 운몽과 나이 차도 그렇게 크지 않은데도 양보하는 법을 먼저 배웠을 넷째 누나 재영도 한 번은 꽉 안아주고 싶은 아이예요.
「낭만닥터 김사부」도 한때는 주부였다!
최근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와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를 통해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는 한석규 배우의 2005년 영화 「미스터 주부퀴즈왕」 이야기입니다.
영화 주인공 진만은 명문대 출신에 해박한 시사상식까지 겸비했지만, 그보다 뛰어난 가사관리 능력 탓에 전업주부가 됩니다. 명문대 출신에 전업주부라, 서울대 로스쿨 출신 주부 운몽과 평행우주를 걷는 듯 닮아 있네요. 운몽의 이야기와는 또 다른 진만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데요! 오늘 퇴근 후 영화는 「미스터 주부퀴즈왕」으로 선택해야겠어요.
"넉넉레터의 첫 번째 이야기 어떠셨나요?"
넉넉레터의 첫 번째 이야기는 어느날 갑자기 주부 재능을 찾은 청년 주부의 성장기를 다룬 「청년 주부 구운몽」으로 함께 했는데요,
글을 쓰신 강선우 작가님은 현직 드라마 작가이기도 하세요.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주최하는 스토리공모대전에서 「조선후궁실록: 연홍전」으로 우수상을 수상하셨고, 「청년 주부 구운몽」 또한 올해 스토리움 우수 스토리로 선정된 작품이지요. 작품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를 클릭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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