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권으로 더욱 넉넉한 추석!

제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 아주 어렸을 때 할머니 댁에 있던 작은 서재를 좋아했어요. 발뒤꿈치를 들어도 손이 닿지 않을 만큼 높은 책장들에 책이 꽉 들어차 있었는데, 그곳에서 쿰쿰한 냄새와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면 책을 읽는 습관이 거기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래서인지 저는 ‘추석’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책’이 따라오곤 합니다. 이제는 비워진 그 서재의 어렴풋한 모습과 함께요. 여러분의 기억 속 ‘추석’ 한 켠에도 떠오르는 책 한 권이 있길 바라며 추석 동안 가족과 함께 대화하기 좋은 주제를 담은 책들을 모아봤어요.

아마도 가장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될 이야기, 두 번째 추천 소설은 강선우 작가의 『청년 주부 구운몽』입니다. ‘추석’과 ‘주부’라는 키워드는 쉽게 떼놓을 수가 없는 관계죠. 실제로 명절 전후로 뉴스에서는 주부들의 명절 우울증과 이혼률 상승 등의 주제를 심심찮게 다루기도 합니다.

하지만 소설 속 ‘주부’는 우리가 흔히 인식하고 있는 중년의 여성이 아니에요. 바로 서울대 로스쿨을 졸업한 청년 백수! 운몽입니다. 운몽은 초록 대문집에 얹혀살다 뜻밖의 ‘주부’로서의 능력을 발견하게 되고 깊은 고민에 빠집니다. 나, 정말 주부가 되어야 하는 운명일까?

운몽의 웃픈 성장기를 위트 있게 그린 소설은 이 땅의 모든 주부와 불안정한 현실을 살고 있는 청년들의 공감을 사며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어요. 부엌에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 모든 분들에게 커피 한 잔의 휴식과 함께하면 좋을 소설 『청년 주부 구운몽』입니다.

마지막 추천 소설은 대학생 딸과 하숙집 주인 엄마의 역지사지 프로젝트, 배경희 작가 『우리 집에 엄마가 산다』입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갈등이 있지만 그중 가장 흔하고 정형화되어 있는 갈등 중 하나가 모녀간의 갈등이 아닐까요? 사랑과 서운함, 미움과 애틋함이 한데 뒤섞인 관계에 꽤 많은 모녀가 공감할 거예요. 물론 저도 그렇습니다.

이야기는 서로를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던 엄마와 딸이 어느 날 입장이 뒤바뀌어버리고, 그러면서 서로를 천천히 이해하고 보듬게 되는 휴먼 드라마 소설입니다. 대학생이 된 엄마와 하숙집 주인이 된 딸의 일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소설은 모녀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의 갈등을 겪고 있는 수많은 ‘연희’와 ‘순희’에게 건네는 편지입니다. 행복하고 넉넉하지만 가족 간 작고 큰 갈등이 생기는 게 예사인 명절, 따듯한 책 한 권으로 조금 더 너그러운 시간을 보내면 좋겠죠?

추석은 한 해의 결실을 거둬들이는 수확의 시기이기도 합니다. 아직 마지막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템포 쉬어가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너무 쉼 없이 달리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미처 돌보지 못한 것들이 남지는 않았는지. 얼마나 많은 수확량을 손에 쥐었는지보다 얼마나 튼튼하고 깨끗한 곡식들이 손에 남았는지가 더 중요할 거예요. 기나긴 추석 연휴 동안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혹은 자신만의 시간을 돌보며 풍요롭고 넉넉하게 보내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