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기운이 전국에 완연한 한 주입니다. 무거운 외투를 한 겹 벗은 덕분에 몸은 가볍지만 따사로운 볕 때문인지 두 눈은 자꾸 무거워지네요. 지루하고 늘어지는 일상, 여러분만의 활력 찾기 방법은 무엇인가요? 시원한 맥주 한 잔, 맛있는 식사 한 끼, 혹은 재미있는 영화를 보거나 여유로운 산책을 즐길 수도 있겠네요.
한실이 놀라 제멋대로 비명을 질렀다. 소리를 지르는데도 그림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실이 눈을 부릅떴다. 어둠 속에서도 어렴풋이 사람의 윤곽이 보였다. 그리 크지 않은 키에 다소 여윈 체격. 그가 한실 쪽으로 가까이 다가오자, 달빛을 받아 생김새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다, 당신은!”
밋밋한 민얼굴이었다. 눈코입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다. 그렇다고 화상 때문에 피부가 녹아버린 것도 아니었다. 그저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밋밋한 얼굴엔 형체라고 부를 게 하나도 없었다.
- 『보름달 마귀』 중에서
삼개주막 기담회의 ‘진짜’ 출발
모든 기담은 주모 김씨가 운영하는 ‘삼개주막’에서 시작됩니다. 손님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겨 다니던 기담은 가끔은 건넌방을 차지하기도 하고, 압록강을 건너 청나라에 들르기도 하죠. 그렇다면 『삼개주막 기담회』는 정말로 어디서 시작했을까요?
삼개주막 기담회는 메일 한 통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물을 챙겨 바다로 향하는 어부처럼,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메일함에 쌓인 투고작들을 읽어 내려가던 어느 날,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여섯 가지 이야기를 만난 거죠. 가장 첫 번째 이야기였던 ‘그림 그리는 노인’을 읽고 기쁨의 비명을 지르고 싶었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그때는 ‘삼개주막 기담회’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전이었으니까, 정말 여섯 가지 이야기만 동그마니 떠다니고 있었어요. 원고를 다 읽은 순간엔 머릿속에 든 것들이 규칙 없이 튀어 오르는 기분이었습니다. 그 생각들은 한 가지 결과로 수렴했죠.
‘이 책은 빨리 내야 한다.’
한국 기담은 종적을 감추다시피 했던 그 시기에 이 여섯 가지 이야기는 분명 전통 기담에 대한 갈증을 해갈시키리라 확신했어요. 그리고 그 예감은 맞아떨어졌습니다. 같은 해 『삼개주막 기담회2』가 출간되고, 나란히 공포소설 판매 상위권을 놓친 적이 없었으니까요.
기담이 비추는 이야기
“역사 소설을 읽는 것은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의 원인을 찾기 위해 과거로 여행을 떠나는 방법 중 하나다. 오윤희 작가가 최근 펴낸 소설 『삼개주막 기담회』가 그의 좋은 예시다.”
영문학 평론가 김성곤 교수님의 『삼개주막 기담회』 서평 중 일부입니다.
소설 속 이야기들은 과거에 머무르는 듯하면서, 현대의 우리를 고스란히 비추고 있어요. 소설 속에는 시정잡배들과 손을 잡은 부정부패한 관리들, 육체적인 아름다움을 좇는 어리석은 자들, 개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규제하는 정부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문제 중 일부라고 할 수 있죠.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메시지는 『삼개주막 기담회』가 유독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과거 그들이 맞닥뜨린 어려움이 현재의 우리가 면하고 있는 두려움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는 공감 말이에요. 이야기 속에서 현대 사회의 모습을 찾아내는 건 씁쓸하지만 무척이나 재미있기도 합니다.
기담 특유의 서늘함과 공포뿐만 아니라 현재의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주는 건 『삼개주막 기담회』만이 가진 대체 불가한 매력이에요.
그래서 선노미는 어떻게 됐는데요?
삼개주막 기담회 시리즈의 애독자라면 잊지 못할 이름이 하나 있을 겁니다. 주모 김씨의 아들이자 ‘수려한 외모로 뭇 여인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한’ 선노미죠. 물론 선노미는 자신이 그토록 여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해요. 이 대목이 가장 매력적인 것 같네요. 묵묵히 주막 일이나 거들며 살 줄 알았던 선노미가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깜짝 놀랄 비밀을 터뜨리더니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언문을 배우고 연암 박지원을 따라 청나라 사행길에 동행합니다.
선노미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기담이 함께해요. 어깨너머로 엿들은 기담을 주위 사람들에게 들려주기도 하고, 난생처음 연모에 빠진 소녀가 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는 기이한 경험을 직접 하기도 하죠. 그러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독자도, 선노미도, 편집자도 생각지 못했던 사건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매주 기이한 이야기를 선정하여 실감 나는 특수분장과 재연으로 시청자들과 패널들의 비명과 감탄을 동시에 끌어내고 있는 스토리텔링 예능, <심야괴담회>입니다.
심야괴담회는 최근 한국인이 좋아하는 예능프로그램으로 뽑히기도 했었죠.
1997년 방영되었던 납량특집 드라마 ‘전설의 고향’이 아직까지도 심심찮게 회자되는 걸 보면 한국인들은 정말 기담을 사랑하는 민족인가 봅니다.
한국 기담의 오랜 부재를 걷어낸 『삼개주막 기담회』가 상상 이상으로 많은 환대를 받았던 것도, 우리의 전반에 깔려 있던 한국 전통 기담에 대한 갈증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여름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기담이 어느덧 사계절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콘텐츠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눈으로 보는 기담, 귀로 듣는 기담, 책으로 읽는 기담.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인가요?
“삼개주막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삼개주막 기담회4』는 한국 전통 기담의 부흥을 알리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삼개주막 기담회』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오윤희 작가님이 가지런히 쌓아 올린 이야기들은 언제나 우리를 감탄하게 합니다. 조선에서 만나는 기담들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요. 삼개주막 기담회로 기담의 재미를 다시 찾게 되었다는 어느 독자님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삼개주막 기담회』 시리즈가 언제나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책으로 남길 바라요.
어느덧 네 번째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고 나니 정말 어디엔가 삼개주막이 있지는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주모 김씨가 만든 뜨끈한 국밥과 옥이와 복이가 종종걸음으로 내어주는 맛있는 수육 한 점이 벌써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네요.
만물이 깨어나는 봄, 새로운 세계로 한 걸음 나아가려 하는 선노미와 시작해볼까요?
독자님!오늘 저희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저번 『사탕비』편에서는 구독자분께서 '자아'라는 주제와 관련된 생각을 나눠주셨습니다. 그리고 두 권의 책도 추천해 주셨어요. (『프랑켄슈타인』, 『당신의 컬러는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