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진, 송정아, 김나영. 이 세 사람이 헤리티지 골드반 엄마들의 중심인 건 아시죠? 따로 몇몇 엄마들과 뭉쳐 미인계라는 모임도 만들고. 근데 그게 다가 아니었어요.”
지예는 가볍게 코웃음 친 다음 말을 이었다.
“그 세 사람, 좀 재밌는 걸 했거든요.”
“뭘 했는데요?”
“행복배틀이요.”
"행복배틀?"
- 『행복배틀』 중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는 행복배틀
패자밖에 남지 않은 배틀이 있습니다. 행복을 위해 남의 뒤통수를 필사적으로 쫓아가는 행복배틀의 끝에는 승자와 패자가 아닌 가해자와 피해자밖에 없었습니다. 이들은 무엇을 위해 이토록 의미 없는 질주를 계속한 걸까요? 우리는 결말이 뚜렷한 레이스를 지켜보면서 아쉬워하고 분개하다가 결국은 진정으로 그들을 안타까워하게 됩니다.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결승선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각자의 출발점도 다르고 레이스의 모양도 다르고 길이도 다르고 결승선의 위치도 다르죠. 하지만 『행복배틀』 속의 엄마들은 SNS에서 본인들의 부를 과시하며 오직 하나의 결승선만을 위해 달립니다. 그리고 그 배틀에서 이기기 위해 남의 행복을 부수는 일도 서슴지 않죠. 남들 부러울 거 하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더 행복해 보이는 게 무슨 소용이지 싶다가도 문득, 그들처럼 나도 남들 따라 얼떨결에 보이는 행복을 좇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미호의 행복은, 유진이었을까요?
누군가를 필사적으로 쫓고 죽이는 레이스 안에서, 쉽사리 간과할 뻔한 게 있었습니다. 바로 미호와 유진의 희미하고 끈끈하게 연결된 우정이에요. 우연히 신문 기사 한 줄로 옛 고등학교 시절 동창 유진이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접한 미호는 자신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어떤 마음으로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어떤 부채감에서 기인한 것이라 하여도 그 기저에는 애틋한 우정이 있었다는 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겁니다. 미호는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계속해서 유진과의 과거를 떠올리기도 해요. 돌아갈 수 없는 행복했던 시절의 이야기들로 미호는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저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걸까요. 소설을 읽으면서 최근 연락이 끊긴 친구 한 명을 오래도록 생각했어요. 저도 이 친구의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된다면 당장이라도 내달려갈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을 어렴풋이 했습니다. 미호가 필사적으로 달리던 레이스의 결승선에는 그 시절의 행복, 유진이 서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행복은 쏟아지는 빗줄기만큼 다양한 것
사람들은 가끔 타인의 행복을 질투하고 뺏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마음이 가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무서운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죠. 소설 속 그 ‘배틀’도 모두 타인의 행복을 시기하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데서 시작된 것이기도 합니다. 마치 행복의 수치가 정해져 있고, 행복해지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요. 소설에서 행복 레이스를 질주하는 모든 이들은 어쩌면 단 한 번도 행복해본 적 없는 사람들 일지도 몰라요.
진정한 행복이란 뭘까요? 좋은 가방이나 화려한 여행, 일확천금 같은 것들이 행복일 수도 있지만 때론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우연히 발견한 재미있는 책, 예상보다 빨리 도착한 택배 상자, 퇴근 후에 푹신한 소파에 앉아 마시는 커피 한 잔, 곧바로 초록불로 바뀐 신호등 같은 것들처럼 말이죠. 가끔씩 휴대폰을 꺼놓고 커피 한 잔과 함께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소중한 행복일 수 있고요.
유치원판 <SKY캐슬>이 있다고요?
대한민국 상위 0.1% 사모님들의 은밀하고 광기 어린 욕망을 그린 드라마 <SKY캐슬>.
인기 예능들이 앞다투어 패러디하고 드라마 속 유행어는 아직까지도 회자될 정도로 대한민국의 열풍급 바람을 일으켰었죠. 상류사회의 이면을 주제로 다룬 콘텐츠들은 언제나 많은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그러나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가득할 테니까요.
<SKY캐슬>이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 엄마들의 전쟁이었다면 『행복배틀』은 유치원 버전 <SKY캐슬>이라고 할 수 있어요. 강남 최고급 영어유치원의 엄마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무수한 의문을 던집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무엇이 나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가. 그들이 보여주는 완벽하고 화려한 삶을 통해 아이러니하게 인생에서 완벽하고 화려한 것만큼 무가치한 건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드라마로 만나보는 『행복배틀』
고즈넉이엔티의 케이스릴러 작가공모전 당선작인 주영하 작가의『행복배틀』이 올해 드디어 드라마 방영을 앞두고 있습니다. Yeah!
이엘, 손우현, 진서연, 차예련, 박효주 등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해 행복배틀을 펼친다고 하니 벌써부터 기대가 큽니다.
『행복배틀』은 SNS의 속물적이고 가식적인 세태를 역동적인 서스펜스로 풀어내며 출간 직후부터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죠. 다수의 영화 드라마 제작사들의 영상화 러브콜을 받은 것은 물론, 프랑스, 대만 등 해외 여섯 개 국가에서 번역 출간되며 그 작품성을 입증받기도 했습니다.
곧 드라마로 만나볼 수 있다는 소식에 고즈넉 식구들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데요, 이번 드라마 방영을 기념해 『행복배틀』리커버판이 출시되었으니 드라마 보기 전 소설 원작도 꼭 보시고 두 배로 즐기시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