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이별로 단비는 알아버렸다. 이별은 세상이 통째로 뒤집히는 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던 세상이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진 세상으로 바뀌는 건 겪어보기 전엔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엄마와의 이별은 진도 10.0의 대지진처럼 단비의 세상을 뒤흔들었다. 강진과 여진이 반복되는 삶은 아프고 고달팠다.
단비는 밤이 무서웠다. 자다가 눈을 뜨면 코앞에서 마주 보이는 어둠이 무서웠다. 어둠은 네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졌다고 쉬지 않고 속삭여댔다. 뼛속까지 차갑게.
그 무서움을 알아버렸기에 단비는 이별의 횟수를 최대한 줄이기로 마음먹었다.
- 『화원귀 문구』 중에서
이별을 만들지 않기 위해
누구에게나 이별은 두렵습니다.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상상만으로도 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죠. 영원히 지속되는 관계는 없으니까요. 그렇기에 ‘모든 만남은 이별을 가진다’라는 말도 있을 테고요. 열일곱 고등학생 단비는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않으려 합니다. 이별의 아픔이 두려워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않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래야만 이별할 일이 생기지 않고, 아프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단비가 그런 결심을 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일 년 전 엄마가 하늘로 떠났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단비 앞에 억울하게 죽은 조선시대 귀신 현이 나타납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집니다. 단비에게 기어코 ‘깊은 관계’가 생기고 만 것이죠.
이별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해
이별의 아픔은 남은 자만의 몫일까요? 아닐 겁니다. 떠나가는 사람도 떠나보낸 사람 못지않게 아픔을 겪고 있을 거예요. 떠나고 싶지 않았음에도 떠나야 했던 이라면 더욱 그럴 거고요. 저승사자가 말하길, 생전 도화서의 화원이었던 현은 의문사를 당했습니다. 157년 만에 현신해 세상에 나타났지만 생전의 기억은 모조리 사라진 상태고요. 현은 죽을 당시로 보이는 참혹한 기억이 눈앞에 아른거리지만 도무지 죽은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 고통스러워합니다. 현은 단비를 만나 기억을 찾아갑니다. 평생을 함께한 사람과 오래도록 키워온 꿈을 뒤로하고 세상을 떠나야 했던 이유를 알아내려는 것이죠. 아무리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현은 이별의 순간을 곱씹고 또 곱씹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별을 이해하기 위해
단비와 현이 이별을 대하는 방식은 사뭇 다릅니다. 엄마를 떠나보낼 수가 없어서 피하기만 하는 단비와 자신의 죽음을 납득할 수 없어서 이별의 순간을 자꾸만 되새기는 현. 두 사람은 각자의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요? 그 이별을 받아들일 방법이 있긴 한 걸까요?
『화원귀 문구』는 이런 고민으로 탄생한 작품입니다. 작가님도 이 소설을 쓰며 많은 위로를 받으셨다고 해요. 작품 말미에 수록된 '작가의 말'에는 "잘 이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 『화원귀 문구』는 어쩌면 저에게 스스로 놓는 예방주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적으셨거든요. 단비와 현의 이야기에 '잘' 이별하는 방법에 대한 열쇠가 있다는 뜻이겠죠?
기이하고도 뭉클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한국 전통 기담소설 『삼개주막 기담회』. 워낙 많은 분께 사랑받은 시리즈인 데다가, 앞서 넉넉레터 다섯 번째 이야기(Click!)에서 소개해드렸으니 모두 알고 계실 거예요.
그런데 슬픈 이야기를 하다가 웬 기담이냐고요? 『화원귀 문구』는 의외로 『삼개주막 기담회』와 닮은 점이 많아요. 두 소설 모두 귀신이 등장하고, 조선을 배경으로 사건이 펼쳐지며(현의 과거가 나오기 때문!), 읽으면 읽을수록 놀랍고 뭉클한 사연이 밝혀지는 이야기거든요. 그리고 한 가지 더! 『삼개주막 기담회3』에는 『화원귀 문구』와 연관된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기도 해요. 첫 번째 에피소드 '압록강 뱃사공'인데요, 여기에 현의 비밀을 유추할 만한 단서가 있습니다. 몰래 알려드리는 거니까 넉넉레터 구독자분들만 알고 계세요! 😘
한국 고등학생과 조선 화원의 시대를 초월한 힐링 프로젝트!
『화원귀 문구』는 김유정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한 소향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입니다. 『이달의 장르소설 4』 등 앤솔러지에 작품을 수록하며 활동을 이어오다 2022 한국콘텐츠진흥원 신진 스토리작가 공모전에 선정되어 『화원귀 문구』를 출간하셨어요. 오늘을 살아가는 청소년의 삶을 생생하게 그리는 소향 작가님의 이야기 세계! 이번 기회에 첫발을 디뎌보세요.
오늘의 두드림에서는 이별에 관해서만 이야기했지만, 사실 그럼에도 굉장히 밝고 명랑한 소설이에요. 단비와 현 그리고 주변 친구들이 각자의 아픈 현실을 이겨내고 나아간다는 점에서 희망찬 소설이기도 하고요. 진짜 이야기는 책을 펼쳐야만 알 수 있습니다.😊
공부하랴 문구점 운영하랴 바쁜 단비와 대뜸 나타나 알바를 하겠다는 귀신 현의 서로를 위로하는 이야기, 책 속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