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는 요즘 가장 잘 팔리는 것 중 하나입니다. 일자리는 줄고 물가는 오르고 타인에 대한 불신은 깊어지고…… 그저 사는 데만도 벅차 연애는 포기한 지 오래인데 무슨 소리냐고요? 네, 그래서 연애가 잘 팔리는 것 같아요.
우후죽순 온갖 연애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일반인인 출연자들은 SNS에서 연예인만큼이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어요. 만날 상대를 매칭해주는 데이팅 앱도 성행하고 있고요. 현실에서 연애를 하기 어려워지자 대리 만족할 콘텐츠와 만남을 도와줄 플랫폼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진 거죠! 이렇게 연애는 상품이 되어가고 있어요.
연애는 앞으로 또 어떻게 변할까요? 언젠가 자연스러운 만남이 희박해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을까요?
“해준 씨는 특별해요.” 엘은 관계를 마치고 난 후에도 해준을 기쁘게 해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듣기 나쁘지 않지만, 입에 발린 칭찬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안 믿어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처음 만난 순간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해준 씨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누군가 입력해주었을 시나리오를 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해준은 우쭐한 기분이 들었다.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특별한 존재가 되길 욕망했다. “나는 어떤가요?” 엘은 마치 애정을 갈구하는 눈빛으로 해준에게 물었다. “해준 씨에게 나는 특별한 존재인가요?” 해준은 말문이 막혔다. 엘의 아름다운 얼굴을, 투명한 눈동자를 바라보며 엘이 원하는 답을 해주고 싶다는 욕망에 흔들렸다.
- 『오프』 중에서
인간 vs AI, 연애하기에 누가 나을까?
사랑이 소멸했습니다. 연애와 결혼은 당연히 사라졌고요. 이제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을 만나 마음을 쓰고 시간과 돈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어느 모로 봐도 비효율적이기 때문이에요. 물론 외롭고 힘들죠. 인간은 혼자 남겨지면 외로움을 느끼고 그것을 피하도록 진화했으니까요. 그래서 인간은 한 단계 더 진화합니다. 언제 자신을 외롭게 할지 모를 타인을 일상에서 배제하게 됩니다. 대신 AI와 관계를 맺습니다. 불확실성이 큰 인간과의 관계를 과감히 포기하고 언제나 확실하게 사랑해주는 AI를 선택하는 것이 외로움을 달래는 데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거죠.
이것 보세요. 인간은 AI보다 나은 점이 하나도 없다니까요?
AI와 연애를 하게 된다면……
이렇듯 『오프』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AI와 연애합니다. 가상현실 연애 플랫폼 ‘러브온’이 그것을 가능케 했어요. 러브온에는 아름답고 멋있고 다정다감한 인공지능 파트너가 있습니다. 접속 기기만 착용하면 시도 때도 없이 현실만큼이나 실감 나고 모든 것이 충만한 가상현실에서 이상적인 상대와 만날 수 있어요. AI와 연인처럼 시간을 보내는 것은 물론, 비밀스러운 욕망을 마음껏 드러낼 수도 있죠. 이 모든 것을 누리면서도 불필요한 감정을 소모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극히 효율적으로 외로움을 달랠 수 있게 된 거예요. 엄청나죠? 이 정도면 러브온의 개발자인 정의건 대표에게 노벨 과학상을 줘도 모자랄 것 같아요. 어쩌면 ‘정의건 과학상’을 만들어줘야 할 정도인지도 모르겠네요.
사랑을 되살리는 방법
완벽한 러브온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오히려 너무 완벽해서 생긴 문제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욕망에 집착합니다. 대다수의 이용자가 오로지 성적 관계를 나누기 위해서만 러브온에 접속하게 됐어요. 러브온의 AI를 더 이상 '연인'이라 여기지 않고, 오로지 욕망을 풀 대상으로만 보는 거죠. 모든 면에서 인간보다 낫다고 생각했던 AI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같이 아무런 흠결도 없기에 누구도 특별하다 느끼지 않습니다. 비로소 사랑과 연애가 완벽한 종말을 맞은 것처럼 세상은 한층 더 삭막해집니다.
러브온이 세상을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바꾸자 정의건 대표는 고심 끝에 인간의 기억을 추출해 AI에게 삽입하겠다는 경악스러운 계획을 발표합니다. 금기로 여겨지던 영역에까지 발을 들인 거예요. 러브온의 직원이자 인공지능 시나리오 작가인 해준은 그의 계획을 저지하려 분투하지만, 이미 커다란 권력을 손에 쥔 대표의 의지를 막기란 쉽지 않습니다.
인간의 존엄을 해치지 않고 더 나은 AI를 만들 수는 없는 걸까요? 어떻게 해야 사랑을 되살릴 수 있을까요?
사랑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인공지능이 나오는 SF 로맨스, 바로 떠오르는 작품이 있죠? 사랑의 본질을 아름답게 탐구한 영화 <그녀(Her)>입니다.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를 비롯한 8개 시상식에서 주요한 상을 받았고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인생 영화로 기억되고 있는 작품이에요. <그녀>의 주인공 테오도르는 편지 대필 작가입니다. 인공지능의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오프』의 주인공 해준과 닮은 인물이죠. 두 사람 모두 사람의 감정을 글로 옮겨 적는 일을 하거든요. 하지만 테오도르는 그 글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해준은 인공지능 시스템에 입력합니다. 이 차이가 두 사람의 선택과 행보를 크게 갈라놓아요. 현실에 발을 딛고 사랑을 탐구하는 테오도르와 달리 해준은 가상과 현실을 넘나들며 사랑이 무엇인지 배워갑니다.
이처럼 『오프』는 <그녀>와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매력이 가득한 소설이에요. 영화 속 사만다에게 마음을 빼앗긴 분들이라면 더욱 추천! 분명히 『오프』의 관능적인 인공지능 파트너 엘의 매력에도 풍덩 빠지실 거예요.
사랑이 소멸한 미래, 눈부시게 빛나는 로맨스
이번에 소개해드린 『오프』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신진 스토리작가 공모전에 선정된 윤설 작가님의 장편소설입니다. 머지않아 현실이 될 법한, 그러나 누구도 상상치 않은 미래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기발한 SF예요. 둘이 아니라 셋의 사랑을 다루는 ‘삼각 로맨스’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진진한 소설이고요. 사랑이 사라진 세상에 살던 해준과 트랜스 휴먼 나미 그리고 버추얼 휴먼 엘은 서로를 만나 처음으로 사랑을 느낍니다. 그리고 책 속에나 남아 있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하죠. 이들은 거대한 음모를 꾸미는 러브온에 맞서며 이윽고 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나날이 사랑하기 어려워지는 요즘, 사랑이란 도대체 뭘까 궁금한 여러분! 『오프』와 함께 사랑에 대해 탐구해보자구요.💖